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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줄 위의 희망

신간 도서-네 줄 위의 희망
  • 출판사

    코뮤니옹

  • 저자

    제임스 A. 그라임스

  • 번역가

    이민철

전대미문의 폭력도 지울 수 없었던 현(絃)의 노래

- 홀로코스트의 바이올린, 인간과 음악에 관해 묻다

바이올린은 수 세기 동안 유대인 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온 악기다. 이 악기에는 유대인들의 민족혼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때문에 나치 독일은 유대 민족뿐 아니라 이들의 모든 문화유산까지 말살하려 했으며, 음악도 예외는 아니었다. 홀로코스트 시기 유대인들의 바이올린은 수용소와 게토를 거치며 주인을 잃거나, 사라지거나, 도둑맞은 것들이 태반이었다. 또 운 좋게 살아남았다고 해도 연주할 수 없을 정도로 부서지거나 크게 손상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바이올린 역시 홀로코스트의 알려지지 않은 피해자였던 셈이다.

이스라엘의 현악기 장인 암논 바인슈타인(1939~2024)은 1990년대부터 홀로코스트 당시 유대인들이 연주하거나 소유한 바이올린들을 수집해 정성껏 수리하고 보존하는 ‘희망의 바이올린(Violins of Hope)’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유대인들의 삶 그 자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악기들은, 이들의 주인만큼이나 차마 말로 다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독일과 아우슈비츠를 넘어 팔레스타인과 모리셔스섬, 노르웨이, 루마니아 등지에서까지 이어진 끈질긴 박해 속에서 바이올린은 유대인들에게 목숨과 생계를 유지하게 한 생존과 구원의 수단이자, 나치와 불의에 맞서는 정의와 저항의 수단이기도 했다.

이 책은 주인을 잃고, 버려지고, 부서지면서도 인류사의 가장 어두운 시기를 ‘살아낸’, 잊힌 줄 알았으나 끝내 잊히지 않은 악기와 음악, 그 너머 인간에 관한 기록이다.

<출판사 서평>

차마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있었던

어떤 음악 이야기

“우리는 순전히 살아남으려고 연주했어요. 우리는 지옥에서 연주했지요.”

- 하인츠 ‘코코’ 슈만 (독일의 재즈 음악가이자 홀로코스트 생존자)

인간에게 음악이란 과연 무엇일까. 즐거움일까, 아니면 고통을 달래는 수단일까. 《네 줄 위의 희망》을 읽다 보면 이러한 질문을 거듭 되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우리는 홀로코스트에 대해 이미 많은 것을 이야기했지만,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보다 앞으로 이야기할 것이 여전히 더 많이 남아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바이올린은 수 세기 동안 유대인 문화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왔다. 유대의 전통 음악을 연주하는 클레즈머(Klezmer) 악단부터 클래식 연주자들에게 이르기까지, 바이올린은 유대인 정신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만큼 나치 독일에 바이올린은 유대 민족과 더불어 말살해야 할 대상이었고, 억압이 심해질수록 바이올린은 유대인 공동체에 없어서는 안 될 악기가 되었다.

이 책은 이제껏 조명된 적 없었던 홀로코스트 시기 유대인들의 바이올린과 음악에 관해 이야기한다. 인류의 가장 어두운 시간이라고 할 수 있었던 이 시기에, 바이올린은 홀로코스트의 비극성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실재(實在)한 한 줄기 희망이었다. 제자리가 아닌 곳에서 울려 퍼진 바이올린 소리는, 역설적으로 바로 그때 그 자리에 존재해야만 했던 음악으로 남아 하나의 전설이 되었다.

네 줄 위에 놓인

홀로코스트 시기 유대인들의 삶

총 6장(章)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저마다 다른 사연을 가진 바이올린들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브로니스와프 후베르만은 현(現)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전신(前身)인 팔레스타인 오케스트라를 결성함으로써 홀로코스트라는 죽음의 문턱에 서 있던 유대인 연주자들과 그들의 가족 1천여 명의 목숨을 구했다(1장). 에리히 바이닝거는 팔레스타인 이주 중, 영국 군함이 이민자들을 가로채는 바람에 모리셔스섬에 5년 가까이 발이 묶인 유대인 난민들을 위해 바이올린을 연주했다(2장). 그런가 하면 나치가 점령한 노르웨이에 확산된 반유대주의로 박해받은 에른스트 글라저는 스웨덴으로 건너가 자신의 바이올린으로 노르웨이의 독립운동을 지원하고(4장), 파이벨 비닝거는 게토화된 루마니아 땅에서 바이올린 연주로 16명에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을 먹여 살렸다. 마지막으로 바이올린에 재능이 남달랐던 모텔레 슐라인은 가족이 나치에게 처참하게 몰살당한 뒤, 소년 게릴라가 되어 자신의 바이올린으로 복수를 감행한다(6장).

바이올린은 말이 없지만, 이들의 주인이었던 유대인 연주자들이 밟아온 삶의 궤적은 악기에도 고스란히 새겨졌다. 홀로코스트로 참혹하게 목숨을 잃거나 재앙을 피해 떠돌 수밖에 없었던 유대인들은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고, 이러한 상황이 인간이라면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고난의 연속으로 이들을 몰아넣었다. 당시에 이루어진 유대인 박해는 독일과 수용소에서뿐 아니라 팔레스타인, 노르웨이, 폴란드, 루마니아, 우크라이나에서도 자행되었으며 수용소로 향하는 열차에서, 죽음의 행군에서, 심지어 그들의 보금자리에서 살해당한 수보다 더 많은 유대인이 지쳐서, 병에 걸려서, 굶어서 죽어 갔다. 가늠조차 되지 않는 숫자로 무심히 스쳐 가는 생명들은, 이 책에서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를 통해 한 사람 한 사람의 살아 있는 이야기로 거듭난다.

삶이 곧 죽음인 곳에서

진정한 삶이었던 음악

이러한 극한의 상황에서 음악은 과연 어떤 역할을 했을까. 유대인들의 바이올린이 겪은 수모는 장마다 기록되어 있지만,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아우슈비츠와 음악을 다룬 3장 〈아우슈비츠의 바이올린-모순된 아름다움〉일 것이다. 수용소와 음악,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 둘의 관계를 증명하듯 이 책은 수용소에 다양한 오케스트라가 있었음을 증언한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오케스트라 대다수가 나치 독일이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강제로 결성한 것이라는 점이다.

수감자들에게 음악은 분명 한 줄기 빛과 같은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비밀 오케스트라를 조직하기도 하고, 바이올린을 숨겨와 수용소 안에서 몰래 연주하기도 했다. 이렇게 연주되는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면 수감된 유대인들은 적어도 마음만큼은 수용소 철조망 너머로 벗어날 수 있었다.

사실 수용소 오케스트라에서 유대인들은 나치의 명령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악기를 조금이라도 연주할 수 있다’는 이유 하나로 원치 않는 연주를 해야만 했다. 하지만 연주를 멈추는 순간 이들의 운명은 여지없이 가스실행(行)이었기에, 심지어 단원들은 그때그때 급한 대로 쥐여주는 악기를 연주하기도 했다. 이들은 주로 수감자들이 행군할 때나 나치 군인들의 오락을 위해, 심지어 동포들이 처형되는 바로 옆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쉴 새 없이 연주를 이어갔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오케스트라 단원이라고 해서 무조건 죽음을 면한 것은 아니었을지라도 음악이 이들에게 단 며칠이라도 살날을 보장했다는 점이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죽이려 하는 인간들을 위해 연주했고, 나치 군인들이 당시에 가장 즐겨 듣던 연주는 이들이 증오해 마지않은 ‘유대인’들이 연주하는, ‘미국’과 ‘유대인’들의 음악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찬 모순투성이의 역사와 인간 행태의 한가운데에는 이렇듯, 음악이 있었다.

한 ‘루시어’의 신념이 되살려낸,

잊힐 뻔한 다른 세계의 목소리

“홀로코스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는 영영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수용소 입구에서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음악을 연주했는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다면…

이 바이올린들은 다른 세계에서 찾아온 목소리인 셈입니다.”

- 암논 바인슈타인

이 책에 등장하는 바이올린들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은 무엇보다 암논 바인슈타인의 의지와 노력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에서 나고 자란 암논은 일찍이 아버지를 따라 바이올린을 제작하고 수리하는 ‘루시어(luthier)’가 되기로 결심하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현악기 장인이 된다. 1980년대, 아우슈비츠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한 한 남성이 바이올린 수리를 맡기러 어느 날 찾아온 일을 계기로, 그는 홀로코스트 당시 유대인들이 소유하거나 연주한 바이올린을 찾아내 삶을 되찾아 주기로 마음먹는다. ‘희망의 바이올린(Violins of Hope)’이라는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비극적인 역사와 함께한 바이올린들을 손에 넣고, 다시 노래할 수 있도록 만들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전쟁 통에 바이올린들은 주인을 잃거나, 사라지거나, 도둑맞은 것들이 태반이었다. 심지어 산전수전을 다 겪고 암논에게 온 바이올린조차 크게 부서지거나 망가져, 연주 자체가 불가능한 것들이 수두룩했다. 암논은 이 바이올린들을 정성껏 고쳐 악기에 새 생명을 불어넣고, 애써 수소문해 주인을 찾아주기도 했다. 천신만고 끝에 암논에 의해 목소리를 되찾은 악기들은 전문 연주자들이 큰 무대에서 연주하면서 전 세계 곳곳에서 홀로코스트의 만행을 알리기에 이른다.

2024년 암논 바인슈타인은 세상을 떠났지만, 이 프로젝트는 유대인뿐 아니라 홀로코스트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에게 지금까지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사실 암논이 남다른 애정을 가진 바이올린은 과르네리나 아마티 같은 고가의 악기가 아니라, 이름 없는 연주자들이 연주한 소박하고 평범한 바이올린이었다. 암논이 보기에 역사적 의미와 절절한 사연이 담긴 이 악기들의 가치는 단순히 금전으로 환산하기 어려웠다. ‘수용소에서 연주한 유대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면’, 이러한 바이올린들이야말로 자칫 역사 속에 묻힐 뻔했던 다른 세계의 목소리들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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