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기북스
라미 카민스키
최지숙
우리에겐 내향인도 외향인도 아닌,
‘이향인’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필요하다!
단체 채팅방의 새 알림을 읽지 않으면 불안해지고, '함께'라는 단어가 당연시 되는 사회. 집단주의 문화는 오랫동안 효율과 안정, 연대를 가능하게 했지만, 동시에 많은 사람을 지치게 해왔다. 정답처럼 제시되는 감정에 동의해야 하고, 분위기에 맞춰 자신의 감정과 리액션을 '수정'해야 하는 그 모든 순간, 우리는 차마 묻지 못한 질문이 하나 있다. "우리는 정말 이렇게까지 연결돼야 하는가."
이 책의 저자인 뉴욕의 저명한 정신과 의사 라미 카인스키 박사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하나의 이름을 제시한다. 바로 '이향인(오트로버트)'. 이향인은 사람을 싫어하는 이도, 사회성이 부족한 이도 아니다. 다만 에너지를 얻는 방식이 다르고, 안정감을 느끼는 구조도 다르며, 사고의 출발점이 ‘우리’가 아니라 ‘나’인 사람이다. 집단 속에 있을 때 오히려 더 외롭고, 혼자 있을 때 가장 자연스러워지는 사람. 모두가 옳다고 말할 때 한 걸음 물러서서 왜 옳은지 묻는 사람. 타인의 박수보다 자기 기준을 더 신뢰하는 사람.
특히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공동체 인간을 이상형으로 제시해왔다. 소속, 협동, 팀워크, 관계 관리 능력은 미덕이었고, 집단에 잘 녹아드는 사람은 모범적으로 여겼다. 그 안에서 이향인은 종종 오해받았다. 소극적이라고, 차갑다고, 적응력이 부족하다고.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그것은 결핍이 아니라 엄연히 다른 '구조'라고. 고쳐야 할 성향이 아니라 이해되어야 할 기질이라고.
이향인은 특정 집단에 대한 강한 소속감으로 정체성을 형성하지 않는다. 회사, 각종 커뮤니티 같은 공동체적 상징에 애착을 느끼지 않으며, 대체로 ‘비참여자’의 위치에서 세상을 관찰한다. 타인의 기대에 맞춰 어울리는 것보다는 자신의 내면을 지키는 쪽을 택한다. 겉으로는 온순해 보일 수 있지만, 내면에는 집단의 강요에 대한 은밀한 저항과 독립성이 존재한다.
이 책은 단순히 이향인을 위한 변명이 아니다. 오히려 집단주의에 피로감을 느끼는 이들에게 건네는 또 하나의 언어다. 함께하기를 강요하는 세상에서 조용히 나만의 삶을 꾸려가는 법. 연결이 기준이 된 시대에, 나만의 고독을 지켜내는 힘을 안내한다. 무엇보다 나 자신에 대한 자책 대신 '다른 방식으로 나답게 살아도 된다'라는 자신에 대한 이해로 나아가게 하는 언어다. 이 책은 그 가능성을 진지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제안한다.
<출판사 서평>
김경일, 하지현 교수 강력 추천!
“인간은 외향·내향 이분법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집단보다 자유를 지향하는 ‘이향성’이 우리 삶의 중요한 축이 된다.그 낯설지만 중요한 인간의 면모를 새롭게 이해하게 만드는 멋진 책이다!”
_김경일 인지심리학자
“왜 세상은 공동체 인간을 위한 곳이 되었나?”
세상이 이향인을 오해하는 방식에 대하여
인간은 본래 혼자 태어나고 결국 혼자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단에 속함으로써 이 근원적 고독을 잠시 잊는다. 공동체는 운명을 함께 나눈다는 감각을 제공하고, 개인의 불안을 완충해주는 장치가 된다. 그래서 사회는 점점 ‘함께하기’를 미덕으로, ‘연결’을 성공의 기준으로 삼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이향인으로 태어나지만, 성장 과정에서 공동체적 인간으로 길러진다. 교육은 협동을 장려하고, 조직은 팀워크를 강조하며, 사회는 소속을 통해 안전과 의미를 제공한다고 말한다. '함께가 혼자보다 낫다'는 믿음은 거의 의심받지 않는다.
문제는 이 표준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점이다. 온순한 아이가 ‘고쳐야 할 아이’로 여겨지고, 소속을 강하게 원하지 않는 성향이 결핍처럼 취급될 때, 이향인은 자신이 어딘가 잘못되었다고 느끼게 된다.
세상은 다수의 감각에 맞추어 설계되었고, 그 다수는 공동체 지향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수가 곧 정답은 아니다. 사회가 공동체 인간 중심으로 구성된 이유는 생존과 안정, 그리고 집단적 효율성 때문이었을 뿐, 그것이 인간 존재의 유일한 방식은 아니다.
인간은 본래 어떤 집단에도 속하지 않은 존재로 태어난다. 소속은 본능이 아니라 학습의 결과이며, ‘우리’라는 감각은 성장 과정에서 천천히 주입된다. 다시 말해, 공동체적 인간은 자연 상태가 아니라 사회화의 산물이다. 이 책은 집단에 잘 녹아드는 사람이 정상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예외라는 통념 대신, 애초에 인간은 고유한 개별성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이 깨달음은 이향인을 변두리에서 중심으로 이동시킨다. 이향성은 탈락이 아니라 출발점이며, 결핍이 아니라 하나의 원형에 가깝다. 그리고 그 원형을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공동체 중심 사회의 규범을 조금 더 유연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내향인도 외향인도 아닌 '이향인'은 어떤 사람인가?”
집단의 중심이 아니라, 자기 삶의 중심에 서는 사람
이향인의 핵심 특성은 1)정서적 자립, 2)관찰자의 시선, 3)집단 밖에서 생각하는 힘을 꼽을 수 있다. 이 세 가지는 단순한 성향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떠받치는 구조이자 존재 방식에 가깝다.
첫째, 이향인은 타인의 인정이나 소속감을 통해 자존감을 확보하려 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져야만 안심하는 구조가 아니라, 혼자 있는 상태에서도 심리적으로 무너지지 않는 구조를 지닌다. 대부분의 사람은 관계가 끊기면 자신이 부정당한 것처럼 느끼지만, 이향인은 관계의 유무와 자기 존재 가치를 동일시하지 않는다. 혼자 있어도 괜찮고, 혼자 있는 시간이 오히려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이는 차갑거나 무관심해서가 아니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스스로 소화하고, 타인의 반응을 통해 끊임없이 확인받지 않아도 되는 내적 근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외부의 박수보다 내부의 기준을 더 신뢰한다.
둘째, 이향인은 집단 한가운데에서 흥분하며 함께 달리기보다는, 한 발짝 물러서서 전체 흐름을 바라보는 쪽에 가깝다. 사람들의 감정이 어떻게 증폭되는지, 분위기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자연스럽게 읽어낸다. 이는 소극성의 표현이 아니라 거리 두기의 능력이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기 때문에 구조를 본다. 모두가 열광할 때 왜 열광하는지를 묻고, 모두가 분노할 때 그 분노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살핀다. 그래서 이향인은 집단의 내부자가 아니라 ‘관찰자’로 남는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통찰이 생겨난다.
셋째, 이향인은 특정 집단 정체성에 깊이 동일시하지 않기 때문에, 다수의 합의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모두가 옳다고 말해도 스스로 질문을 던질 수 있고, 유행이나 분위기에 쉽게 동조하지 않는다. 이는 반항심 때문이 아니라, 사고의 출발점이 ‘우리’가 아니라 ‘나’이기 때문이다. 집단의 안전망은 약하지만, 대신 사고의 독립성이 강하다. 그래서 이향인은 때로 고독하지만, 동시에 사유의 자유를 가진다.
이 세 가지 특성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정서적으로 자립해 있기 때문에 관찰자의 위치를 견딜 수 있고, 관찰자의 위치에 서 있기 때문에 집단 밖에서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집단 밖에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정서적으로 흔들리지 않는다. 이향인은 결핍된 존재가 아니다. 다만 에너지를 공급받는 방식이 다르고, 안정감을 얻는 구조가 다르며, 사고의 출발점이 다를 뿐이다. 이 구조를 이해하는 순간, 이향인은 더 이상 ‘어딘가 어긋난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이향인의 삶은 약점이 아니라 하나의 능력이 된다.
“연결되지 않아도 괜찮은 삶은 가능한가?”
이향인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
그리고 이향인으로서 좋은 삶을 영위하는 법
이향인으로 산다는 것은 ‘고쳐야 할 사람’이 아니라 ‘다른 구조를 가진 사람’으로 자신을 이해하는 일이다. 왼손잡이를 억지로 오른손잡이로 바꾸려 할 때 불필요한 고통이 생기듯, 이향인도 본래 모습대로 살 때 비로소 편안해진다. 이향인에게 고독은 결핍이 아니라 자원이다. 특히 성인기에 들어 소속의 압박이 줄어들면, 고독은 자유가 된다. 타인과 무관한 자기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자기 수용을 꽃피울 기회가 된다. 무엇을 하며 혼자 시간을 보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자신의 필요와 욕구에 맞는가 하는 점이다.
이향인으로서 좋은 삶을 산다는 것은 외부의 인정에 휘둘리지 않고 삶의 주도권을 쥐는 일이다. 다수와 다르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축소하지 않고, 집단 밖에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관계의 수를 늘리는 대신 질을 깊게 하고, 모두와 어울리려 애쓰기보다 소수와 진정한 우정을 나누는 길을 택하는 것이다.
결국 이향인의 삶은 ‘덜 연결된 삶’이 아니라 ‘다르게 연결된 삶’이다. 세상이 요구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이 숨 쉬기 편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용기다. 함께하기를 강요하는 세상에서 조용히 나만의 삶을 꾸려가는 일, 그것이 이향인으로 산다는 것의 본질이다. 그리고 그 삶은 결코 외로운 패배가 아니라, 내면의 나침반을 따라 걷는 하나의 당당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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