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듬앤북스
윌라 캐더 , 세라 온 주잇 외
유라영
『차가운 불이 흐르는 바다』는 리얼리즘에서 모더니즘으로 문학 패러다임이 격변하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영미권 여성 작가들의 ‘바다’를 모티프로 한 수작을 엄선해 엮은 단편선집이다. 이 시기는 산업화·도시화·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사회 구조가 빠르게 변화하고, 여성의 교육·노동 기회가 점차 확대되면서 전통적인 여성성 규범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때였다. 이러한 사회적 격변은 여성 작가들에게 인물의 내면, 억압된 욕망, 자유에 대한 갈망, 관계의 재구성을 본격적으로 탐구하게 만드는 서사적 동력으로 작용했다. 제목 ‘차가운 불이 흐르는 바다’는 바로 그 시대적 흐름과 당시 여성들의 역설적인 존재 방식을 상징한다. 세상의 냉대와 규범의 파도 앞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차가운’ 외피를 둘러야 했지만, 내면 깊은 곳에는 삶과 사랑, 자유와 자아를 향한 꺼지지 않는 ‘불’을 품었던 여성들의 서사가 응축되어 있다.
총 일곱 편의 수록작 중에서 캐서린 맨스필드의 작품을 제외한 여섯 편이 국내 초역이다. 특히 조지 에저턴과 앤 리브 올드리치는 한국 독자들에게 처음으로 소개되는 작가이다. 조지 에저턴은 여성의 독립적 주체성과 복잡한 내면을 과감하게 드러내며 당대 엄격한 젠더 규범을 흔들었던 신여성 문화의 선구자이고, 앤 리브 올드리치는 '미국의 사포'라 불리며 감성적인 문체로 높은 평가를 받은 시인 겸 소설가이다. 여기에20세기 미국 문학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윌라 캐더와 세라 온 주잇의 단편 수작부터 우리에게 친숙한 『소공녀』의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과 『빨간 머리 앤』의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색다른 면모가 담긴 단편을 담았다.
『차가운 불이 흐르는 바다』에 담긴 일곱 작가의 목소리는 시대의 냉대 속에서도 스스로 운명의 항로를 개척한 여성들의 진솔한 기록이다. 규범에 균열을 내고, 끝내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들의 ‘차가운 불’이 당신 안에 잠들어 있던 불을 깨우고,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도록 초대한다.
<출판사 서평>
19세기에서 20세기 초, 리얼리즘에서 모더니즘까지
‘바다’를 모티프로 한 영미 명작 단편선
『차가운 불이 흐르는 바다』는 리얼리즘에서 모더니즘으로 문학 패러다임이 격변하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영미권 여성 작가들의 ‘바다’를 모티프로 한 수작을 엄선해 엮은 단편선집이다. 이 시기는 산업화·도시화·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사회 구조가 빠르게 변화하고, 여성의 교육·노동 기회가 점차 확대되면서 전통적인 여성성 규범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때였다. 사회적 관습이 여성의 역할을 규정한다는 문제의식이 등장했고, 이는 자신의 욕망과 자의식을 주체적으로 탐구하려는 새로운 여성상, 즉 ‘신여성New Woman’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사회적 격변은 여성 작가들에게 인물의 내면, 억압된 욕망, 자유에 대한 갈망, 관계의 재구성을 본격적으로 탐구하게 만드는 서사적 동력으로 작용했다. 제목 ‘차가운 불이 흐르는 바다’는 바로 그 시대적 흐름과 당시 여성들의 역설적인 존재 방식을 상징한다. 세상의 냉대와 규범의 파도 앞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차가운’ 외피를 둘러야 했지만, 내면 깊은 곳에는 삶과 사랑, 자유와 자아를 향한 꺼지지 않는 ‘불’을 품었던 여성들의 서사가 응축되어 있다.
억압을 뚫고 피어난 불꽃: 신여성, 욕망과 사랑을 말하다
‘신여성’의 등장과 억압된 욕망의 전면화라는 시대적 화두는 제일 앞에 수록된 조지 에저턴의 「교차선」에서 두드러진다. 에저턴은 여성에게도 자기 삶에 대한 주체적 욕구와 더불어 성적 욕망이 존재하고, 이 복합적인 욕망은 사회적 제약 속에서 끊임없이 교차하고 사라진다는 점을 포착한다. 특히 주요 등장인물에 익명성을 부여하고, 현재 시제로 서술한 방식은 개인의 정체성을 보편화하고, 모든 여성의 내면에 잠재된 갈등을 독자가 즉각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모더니즘적인 시도로 평가받는다. 이어지는 윌라 캐더의 「갈매기 나는 길」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앞에서 자존심과 주체성을 잃지 않는 강인한 여성의 면모를 섬세하게 그려낸 수작이다. 캐더는 비극적인 관계 속에서 여성의 자존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고찰하며 상실의 미학을 완성한다. 이 두 작품은 시대가 금지했던 여성의 사랑과 욕망을 전면에 배치하며, 여성 주체성 탐구의 서막을 알린다.
사랑의 제도화와 사회적 냉대: 규범과 낙인이 폭력으로 번지다
그러나 해방된 욕망이 모두 행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의 「아를에서의 하루」는 전통적인 결혼관에 균열을 내는 파격적인 결말로 『소공녀』로 친숙한 아동문학가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기회를 제공한다. 질투에 눈이 먼 사내가 거짓말로 아내를 얻은 뒤, 그 기만이 발각되면서 일어나는 이 이야기는 흡입력 있는 소재와 빠른 전개가 특징이다. 주잇의 「잃어버린 연인」은 오래전에 죽은 줄만 알았던 첫사랑을 중년에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는 여성의 이야기다. 낭만적 추억과 부담스러운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는 여성의 복잡미묘한 심리를 솔직하고 깊이 있게 묘사한다. 앤 리브 올드리치의 「마을의 오필리아」는 실패한 사랑 때문에 온 마을에 '정신 나간 사람(오필리아)'으로 낙인찍힌 젊은 여성의 고통을 그린 작품이다.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난 여성에게 가해지는 낙인의 폭력성을 고발하면서, 그 고통 속에서 발버둥 치는 여성의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한다. 이 세 작품은 사랑과 결혼제도가 여성에게 부과한 고통과 낙인이라는 현실적 난관을 조명하면서, 여성의 정체성과 자존이 냉혹한 현실과의 싸움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상실을 건너 발견으로: 자아를 회복하고 재구성하다
고통과 좌절의 시기를 지나면, 자아 회복과 재구성의 서사가 기다린다. 이 서사는 캐서린 맨스필드와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작품에서 새로운 시작이라는 희망과 무한한 가능성으로 귀결된다. 맨스필드의 「항해」는 어머니를 잃은 어린 소녀가 짙은 어둠을 지나 서서히 밝아오는 새벽으로 나아가는 회복의 여정을 담담하게 그려낸 모더니즘 명작이다. 이 책의 대미를 장식하는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바다가 부르는 소리」는 작은 어촌 마을을 떠나는 여성의 자립과 성장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리면서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여성의 자아 발견’이라는 단편선의 핵심 메시지를 도출한다.
『차가운 불이 흐르는 바다』에 담긴 일곱 작가의 목소리는 시대의 냉대 속에서도 스스로 운명의 항로를 개척한 여성들의 진솔한 기록이다. 규범에 균열을 내고, 끝내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들의 ‘차가운 불’이 당신 안에 잠들어 있던 불을 깨우고,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도록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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