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책방
정추위
오하나
“당신이 온 세상을 잊어도 나는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치매로 말을 잃어가는 배우자와 침묵을 껴안은 세계적인 언어학자의 이야기
대만의 세계적 언어학자 정추위. 40년 넘는 세월을 매일 대화를 나누며 동고동락한 남편에게 어느 날 갑자기 치매가 덮쳐온다. 그는 수학 교수였을 만큼 논리적이며 지성으로 빛나는 사람이었지만 하루가 다르게 말이 짧아지고 기억을 잃는다. 사랑했던 기억도 사랑의 언어도 사라져간다. 수많은 책, 그 어떤 연구 자료로도 알 수 없었다. 몸은 살아 있지만 마음은 매일 세상을 떠나가는 배우자와의 이별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이것은 그가 보내는 아주 느린 작별 인사일까. 이 거대한 상실을 어떻게 끌어안아야 할까.
『아주 느린 작별』은 언어학자인 저자가 치매로 말을 잃어가는 배우자와 함께한 시간을 써 내려간 에세이다. 계약 후 불과 4개월 만에 완성된 원고는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올라 대만 전역을 눈물과 감동으로 물들였다. 반려자를 하루하루 잃어가는 슬픔, 매일 덮쳐오는 불안과 무기력 앞에서도 꺾이지 않는 사랑, 단단한 생의 의지가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담겨 있다. 국내 유명 사진작가 GABWORKS의 작품을 수록하는 등 상실 속에서도 변치 않는 생의 의지를 아름답게 담아냈다.
“질병의 통계나 단편적인 증상 너머에 있는 한 인간과
그 가족의 존엄, 사랑, 슬픔을 깊이 이해하게 만든다.”_정희원(내과 전문의)
<출판사 서평>
* 내과 의사 정희원 강력 추천, 출간 즉시 대만 베스트셀러 *
세계적인 학자 부부에게 어느 날 찾아온,
지성과 사랑으로도 막을 수 없는 어떤 비극
한 부부가 있다. 평생의 연구로 국제적으로 존경받는 언어학자 정추위, 대학에서 수학 교수로 일하며 성실히 가족을 지탱한 푸보. 가난한 미국 유학 생활 시절부터 40년 넘게 동고동락한 이 부부에게는 수십 년 이어온 중요한 루틴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매일 아침에 푸보가 내어 온 커피를 마시며 대화로 하루를 열고, 퇴근 후에는 한데 모여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 것. 하지만 언젠가부터 푸보는 말이 짧아지고 침묵에 빠진다. 그에게 치매가 덮쳐온 것이다. 좋아하던 커피를 수십 잔 내려 집 안 곳곳에 두거나, 매일 수도 없이 전화를 걸어댔고, 방향감각을 잃어 집을 찾지 못하는 날도 많아졌다. 저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배우자가 무너지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다시는 나를 이해해 주지 않는 남편이란 이토록 슬픈 존재구나. 아무런 대답 없는 가족이란 이토록 상처가 되는구나. 사람은 아직 있는데, 나의 반쪽은 사라지고 없구나….”(8쪽) 그는 살아 있지만 몸만 이곳에 있을 뿐, 마음은 이미 세상을 떠나가고 있었다.
한국은 이미 초고령사회에 접어들었고 대만 역시 마찬가지다. 집안에 고령의 환자가 생기면 전처럼 젊은 손아랫사람의 간병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같이 나이 들어가는 처지의 배우자가 첫 번째 책임자가 되는 환경이다. 『아주 느린 작별』은 노년의 배우자가 치매에 걸린 배우자를 돌본 기록이라는 점에서 치매 부모를 돌보는 자식 혹은 의료계 종사자가 쓴, 여타의 책과는 색다른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저자는 68세의 나이로 집에서 남편을 돌보기 시작했으며, 할 수 있는 모든 헌신과 사랑을 쏟지만 남편의 병세는 급격히 악화한다. 한평생 연구에 매진한 부부가 쌓아온 빛나는 지성, 깊은 유대 관계도 삶에 밀려오는 비극 앞에서는 한없이 무력해졌다. 배운 것과 살아내는 것의 차이를 몸소 느낀 저자는 자신의 생에 덮쳐온 이 커다란 상실을 전력으로 마주하기로 한다.
대만에서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올라 선풍적인 인기를 끈 에세이로, 불행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 의지를 아름답게 펼쳐 보이며 읽는 이들에게 담담한 위로와 응원을 건넨다. 국내 유명 사진작가 GABWORKS의 작품을 곳곳에 수록하여 이야기의 여운을 더한다.
인생의 필연적 이별을 마주하며
언어학자가 상실에 붙이는 새로운 의미
“치매 가족을 돌보는 일이란 그런 것이다. 그가 나에게 기나긴 작별 인사를 건넬 때, 어둡고 긴 터널을 마지막까지 그와 함께 걷는 일.”(114쪽) 질병, 죽음… 우리는 모두 사랑하는 이와의 작별을 겪는다. 대체 이 상실을 어떻게 견뎌내야 할까? 이 책은 치매라는 상실의 경험을 단지 개인적 고통으로 머무르지 않고, 보편적 두려움과 공감의 언어로 풀어낸다. 저자는 온몸으로 경험한 이 필연적 상실을 심장에 사무치는 슬픔,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로 써 내려갔다고 말한다. 하지만 단 한 순간도 좌절하지 않으며 사랑과 의지의 태도로 그 시간을 견뎌낸다. 잃어가는 언어와 기억 속에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 그것은 가족을 향한 사랑과 끝내 삶을 살아내고자 하는 생의 의지였다. 저자는 마침내 자신이 겪은 상실에 새로운 의미를 붙인다.“그가 우리를 보고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아도 슬프지 않았다. 그가 우리를 향해 웃어 보일 때면 우리도 마주 웃었다. 그를 사랑하는 지금의 우리 모녀에게는 그의 어떤 대답도 필요치 않다”(161쪽) 함께 쌓은 사랑과 기억은 그 자체로 의미 있으며, 어떤 보답도 필요치 않는다. 독자는 이 책에 기록된 생생한 삶의 체험을 통해‘나에게도 언젠가 찾아올 상실’을 미리 마주하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사유하게 된다. 그리고 그 상실 앞에서 나는 무엇을 지켜야 할지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이별 이후에도 생은 계속되니까
아픔의 끝에서 다시 나아가는 삶
상실 이후의 삶은 어떻게 이어지는가. 저자는 남편의 병세가 심해지자 서둘러 은퇴하고 24시간 대기조, 전천후 보호자가 된다. 그사이 자신의 몸과 마음도 병들어간다. 그 지난한 과정을 겪으며‘노년의 삶’을 다시 생각한다. “나는 푸보를 돌보기 전은 물론 돌보는 과정에서조차 남편은 있으나 동반자가 없는 나를 위한 마음의 준비를 조금도 해두지 않았음을 깨달았다.”(9쪽) 돌봄과 간병은 한 개인의 삶을 소진시키는 고통인 동시에 자기 자신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 책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후에도 계속 살아가야만 하는 인생을 보여주며,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질문을 건넨다. 저자는 자신과 딸을 영영 알아볼 수 없게 된 남편을 힘겹게 받아들이며 작별을 고한 뒤 혼자 살아가야 할 시간을 마주할 힘을 낸다. 지인으로 이루어진 ‘추위 지원단’을 결성해 위급 상황시에 그들이 자신을 대신해 대처할 수 있게 인적 지원망을 마련하기도 하고 그간 애써 외면해 온 치료를 받는 등 인생 곳곳을 손본다.
“그동안 어깨에 한가득 짊어지고 있던 책임을 내려놓았다. 다시는 그 누구도 책임질 필요가 없었다. 지금 나는 인생의 황혼기에 서 있다. … 앞으로의 나는 미련 없이 나 자신으로 돌아가 꾹꾹 눌러 담아도 부족하기만 한 여생을 즐길 것이다.”(230쪽)
이 책에는 고통과 함께 찾아오는 삶의 의미와 존엄, 사랑하는 한 사람의 세계가 사라지고 그 아픔 끝에서 홀로 일어서는 과정이 오롯이 담겨 있다. 생에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질병과 죽음과 그로 인한 이별을 통과해 낼 사람들, 고난에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낼 방법을 찾는 이들에게 삶을 다시 나아가게 하는 용기를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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