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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바른번역 20-07-09 13:20 112

시한부 진단을 받은 작가가
죽어가면서 관찰한 몸, 삶, 가족 그리고 사랑에 대한 기록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사는 조는 언젠가부터 힘없이 픽픽 쓰러진다. 병명은 운동신경질환, 근육을 조절하는 뇌와 척수의 운동신경세포가 손상되는 희귀성 난치병이다. 하루가 다르게 몸이 쇠약해지고, 장애를 갖게 된 자신으로 인해 가족의 일상이 180도 달라진다. 그는 자신의 몸이 점점 무너져가는 상실의 과정과 눈앞에 닥칠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이들과의 작별을 준비하며 기록을 시작한다. 이 책은 투병기가 아니다. 시한부 진단을 받은 작가가 기록한 생의 마지막 여정이자, 죽어가면서 관찰한 몸, 삶, 가족 그리고 사랑에 대한 기록이다.

조는 소외계층의 젊은이들, 자선단체와 함께 극단을 운영하는 작가이자 극본가였다. 2017년 11월에 운동신경질환을 진단받고 생을 마감하기까지 2년 동안 쇠락해가는 몸을 지탱하며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기록한다. 『굿바이』는 두 살, 일곱 살 어린 두 아들을 두고 떠나는 아빠가 미래의 두 아들을 위해 남기는 회고록이자 작별인사다. 책이 출간되고 석 달 후, 그는 가족의 품에서 평온하게 생을 마쳤다. 그의 나이 50세였다. 삶과 죽음, 그 사이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오늘을 살아갈 힘은 어쩌면 대단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 그대로의 내 삶과 곁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으로 평범한 일상이 소중해지는 순간 같은 것 말이다. 『굿 바이』는 그런 순간을 선물한다.

<출판사 서평>

어느 시한부 작가가 기록한 生의 마지막 여정,
자신의 죽음에 관한 짧은 역사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사는 조는 언젠가부터 힘없이 픽픽 쓰러진다. 병명은 운동신경질환, 근육을 조절하는 뇌와 척수의 운동신경세포가 손상되는 희귀성 난치병이다. 하루가 다르게 몸이 쇠약해지고, 장애를 갖게 된 자신으로 인해 가족의 일상이 180도 달라진다. 그는 자신의 몸이 점점 무너져가는 상실의 과정과 눈앞에 닥칠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이들과의 작별을 준비하며 기록을 시작한다. 이 책은 투병기가 아니다. 시한부 진단을 받은 작가가 기록한 생의 마지막 여정이자, 죽어가면서 관찰한 몸, 삶, 가족 그리고 사랑에 대한 기록이다.

조는 소외계층의 젊은이들, 자선단체와 함께 극단을 운영하는 작가이자 극본가였다. 2017년 11월에 운동신경질환을 진단받고 생을 마감하기까지 2년 동안 쇠락해가는 몸을 지탱하며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기록한다. 『굿바이』는 두 살, 일곱 살 어린 두 아들을 두고 떠나는 아빠가 미래의 두 아들을 위해 남기는 회고록이자 작별인사다. 책이 출간되고 석 달 후, 그는 가족의 품에서 평온하게 생을 마쳤다. 그의 나이 50세였다.

두 살, 일곱 살 두 아들에게 남기는
서른세 장의 생일카드

조는 오래된 신발 상자 하나를 안방 서랍 속에 보관하고 있다. 그 상자에는 어린 두 아들을 위한 서른세 장의 생일카드가 들어 있다. 아이가 자신의 존재를 기억할 만큼 자랄 때까지 기다려줄 수 없는 아빠가 미래를 함께할 수 없는 미안함과 사랑을 담아 매년 한 장씩, 두 살과 일곱 살인 두 아들이 스물한 살이 될 때까지 그가 챙기지 못할 생일을 예비한 것이다. 어릴 때 아버지를 잃은 친구로부터 생일이 최악의 날이었다는 얘기를 들었던 그는 이렇게라도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었던 것이다. 서른세 장의 생일카드 이야기는 『가디언』 기사를 통해 소개되어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기도 했다.

그는 부모로부터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모의 불화와 이혼으로 어느 주말에는 엄마의 애인과, 어느 주말에는 아빠의 애인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는 불안정하고 어른들에 대한 분노로 가득했던 여덟아홉 살 무렵의 자신을 떠올리며 따뜻하게 안아준다. 한 번도 진심으로 아버지가 되고자 한 적이 없었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꺼내며 어쩌면 아버지와의 화해를 시도했는지도 모르겠다.

부모의 사랑이 평생의 결핍으로 남아 있기에 그의 부성과 가족애는 남달랐을 것이다. 어린 두 아들을 두고 떠나야 하는 미안함과 안타까움, 자신의 몫까지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아내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이 담담히 써내려간 행간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자기 연민을 초월한 호기심과
위트 넘치는 표현 속에 숨겨진 두려움과 애틋함

그는 운동신경질환이 어떤 질병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없어 그저 온몸으로 겪어냈다. 의학은 운동신경세포가 언제 어떻게 왜 죽는지, 뇌와 근육조직의 소통 체계가 왜 고장 나는지 말해주지 못했다. 쇠퇴해가는 몸에 대해 사유하고 글을 쓸 때 상상력에 기대 은유적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그래서 자신의 몸 깊은 곳에서 절실하게 경험하는 감각을 잘 묘사하는 일이 더욱 중요했다.

그는 넘어지고, 골절되고, 피 흘리는 다급한 상황을 그저 관찰자가 되어 기록한다. 중심을 잃고 넘어지는 순간에도 넘어지는 각도를 생각하고, 팔과 다리가 어떻게 될지, 주변에 위험한 상황은 없는지, 넘어지고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 순간의 움직임과 내면의 생각들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자기 연민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다. 자기 연민을 초월한 호기심으로 자신이 죽어가는 과정을 그저 관찰하고 담담하게 기록한다. 처음 진단을 받고 나서 펑펑 쏟아지는 눈물조차도 수력발전소에 비유하는 등 그의 위트 넘치는 표현과 생생한 묘사 때문에 그의 글은 마치 한 편의 소설을 읽는 것 같다. 그는 아프고 나서 생존 기술의 하나로 침착해지는 것을 배웠다고 고백한다. 담담함으로 두려움을 조심스럽게 감춘 것이다. 위트 넘치는 표현과 절제된 담담함이 그래서 더 애틋하게 느껴진다. 그는 새로운 보금자리인 방갈로에서의 행복한 모습을 상상하는 것으로 글을 마친다. 하지만 그도, 독자들도 알고 있다. 그 행복이 현실로 이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는 운동신경의 퇴화로 의자에 앉는 것도, 손가락을 움직여 자판을 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보름 전에 『가디언』에 보낸 마지막 원고를 보면 튜브로 영양을 공급받으며, 동공 반사를 추적하는 컴퓨터에 카메라를 부착하고 글을 썼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마지막 에너지를 두 아들을 위한 글쓰기에 바쳤다. 마지막까지 아빠로서 그리고 작가로서 최선의 삶을 산 것이다.

삶과 죽음, 그 사이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오늘을 살아갈 힘은 어쩌면 대단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 그대로의 내 삶과 곁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으로 평범한 일상이 소중해지는 순간 같은 것 말이다. 『굿 바이』는 그런 순간을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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