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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역사 바른번역 18-04-27 13:57 337

인류가 그토록 흠모하고 갈망해온
‘지혜’에 대한 경이로운 탐사와 통찰!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지혜를 갈망해왔다. 고대의 작가들은 격언집과 우화집 속에 지혜를 담아두려고 애썼고, 현대의 학자들은 그 속에 담긴 지혜의 정수를 밝혀내려고 애쓴다. 장소와 방법은 달라도 인류는 줄곧 지혜를 추구해왔다. 지혜를 귀하게 여겨서 그 가치를 진귀한 보석에 비유하기도 했다. 어떤 이는 지혜가 인간 이해의 범주를 벗어난다고 믿으면서 본질적으로 신성한 것으로 간주했다. 지혜를 그보다 낮게 평가하는 사람들 역시 지혜에 상당한 찬사를 보내기는 마찬가지이다.

역사적으로 지혜는 조언자, 재판관, 치료사, 마법사, 점술가, 시인, 발명가 등의 역할과 밀접하게 관련되었다. 그들이 반드시 당대에 가장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거나 특권과 부를 누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지혜로운 자는 늘 사회의 엘리트로 대접받는다. 그들이 스스로 사회를 변혁하거나 움직이는 역할을 맡지는 않더라도, 사회 변화를 이끈 자들은 대개 지혜를 추구한다. 지혜의 세계에는 대단히 불가사의한 영역이 존재하긴 하지만, 상당 부분은 우리의 일상생활과 놀라울 정도로 가까이 존재한다.

<출판사 서평>

인류가 그토록 사랑해온 ‘지혜’란 과연 무엇인가?
이 책은 지혜의 세계로 들어가는 안내서로서, 인류의 역사 속에 드러난 다채로운 형태의 지혜를 보여주고자 한다. 먼저, 고대의 철학자들에서부터 현대의 학자들에 이르기까지 지혜를 정의하고자 했던 무수한 발자취들을 찾아간다. 인류 역사 이래로 지혜에 대해 합의된 정의는 없었다. 가령, 아리스토텔레스는 지혜를 철학적‘제1원리’라고 생각했다. 제1원리는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근본적으로 설명해주는 지식이다. 지식, 그 중에서도 특히 광범위하고 심도 깊은 지식이 지혜와 관련된다는 시각은 자주 등장한다. 반면에 키케로는 지혜란‘영혼이 건강한 상태’를 뜻한다고 보았다. 지혜가 심리적 또는 영적 건강을 뜻한다는 생각은 드물지 않다. 하지만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생각한 지혜는 또 달랐다. 그는 신을 숭배하고 신에게 헌신하는 신앙심으로 지혜를 정의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지혜 연구 프로젝트인‘베를린 위즈덤 패러다임’에서 내린 지혜에 대한 정의가 가장 영향력이 있다. 이 패러다임은 지혜의 핵심 요소로 다섯 가지를 제시한다.‘삶에 대한 풍부한 사실적 지식, 삶에 대한 풍부한 절차적 지식, 인생 여정에 대한 맥락주의, 삶의 가치와 우선순위에 대한 상대주의, 불확실성에 대한 인식과 관리’가 그것이다. 이것은‘지혜란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이자‘어떻게 지혜를 판별하는가?’에 대한 지침도 된다. 이 정의에 맞는 지혜로운 자라고 하면‘이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잘 알고 있거나 불확실한 일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며,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행동으로 드러날 것’이라고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베를린 위즈덤 패러다임의 결론은 주로 감정적 측면이 결여되었다는 이유로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도 많았다. 그 중 모니카 아델트는 지혜를 인지적, 반성적, 정서적 차원의 세 가지로 재단하는 ‘3차원 지혜 측정법’을 제시했다. 인지적 차원은 베를린 위즈덤 패러다임에서 제시한 정의와 거의 비슷하고, 반성적 차원은 자기반성과 자각 능력을 뜻하며, 정서적 차원에는 타인을 향한 감정이 포함된다. 하지만 이것 역시 지혜를 측정하는 도구라는 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캐롤린 알드윈은‘지혜는 자기인식, 집착 버리기, 동화, 자기초월, 자기중심에서 벗어나는 과정 등에서 획득되는 사고력이다.’라는 의견을 제시했는데, 과학보다는 철학, 심리학, 신비주의적 전통에 좀더 많은 영향을 받은 연구였다. 2008년, 알드윈과 아델트를 위시한 여러 학자들이 지혜에 대한 다양한 사상적 줄기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정의를 도출하고자 했는데, 그 결과물은 이러하다.
“지혜는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인 동시에 개인이 자기인식과, 자아통합과, 집착 버리기와, 자기초월과, 타인에 대한 연민을 증가시켜가는 발전적 과정에 있음을 드러내는 실천이다. 이 실천에는 좀 더 향상된 자기관리와 바람직한 윤리적 선택이 수반되며, 결과적으로도 자신과 타인에게 훨씬 이롭다.”

지혜로운 자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가?
그렇다면 지혜로운 사람을 지혜롭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최근의 연구에서 부각되는 주제 중 하나는‘살면서 맞닥뜨리는 여러 문제에 대처하는 능력과 지혜의 연관성’이라고 한다. 고전 연구가 조지프 캠벨은 그의 책에서‘삶의 문제에 대처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인식의 한계 때문이다’라고 썼다. 많은 사람들이 흔히 꿈을 꾸는 것과 다름없는 상태로 살아간다는 견해는 다양한 사상적 전통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각종 영웅담에서 주인공은 잠에서 깨어나는 일종의 각성을 통해 새로운 빛 속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그 새로운 빛이란 기존 세계를 비추던 것과는 다른 더 좋은 빛이다. 샤먼이나 영웅은 이를 통해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세상의 문제를 더 잘 다룰 수 있게 된다.
현인은 남들보다 큰 그림과 넓은 지평을 더 또렷하게 볼 줄 아는 사람이며, 지혜의 빛 속에서 사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상 지혜롭다고 명성이 자자했던 사람에게는 조언을 구하는 이들이 끊임없이 찾아왔다. 배를 만들거나 페인트를 칠하거나 구두를 수선하는 일을 묻기 위해 지혜로운 자를 찾아가는 것은 적절치 않다. 지혜와 관련된 조언은 그다지 전문적이거나 기술적이지 않다. 지혜로운 사람이 지닌 기술은 삶을 잘 꾸려나가고 좋은 결정을 내리는 능력이다. 이를 보고‘지혜는 대처능력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지혜를 최소한만 이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잘 사는 삶을 두고‘번창’이라는 한 차원 높은 표현을 썼는데, 이와 유사한 개념의 정점은 불교에서 말하는‘깨달음’의 경지일 것이다.

인류 역사에 드러난 지혜의 모든 것을 탐구한 역작!
지혜는 수천 년 동안 인류를 매혹시켜왔다. 철학자들은 지혜를 사랑했고, 학자들은 지혜를 규정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지혜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지 못한다. 사랑과 죽음 같은 인간 존재의 근본적 특성에서 기인한 문제는 어느 사회에서나 고민거리였다. 이러한 문제 앞에서 인류는 무엇이 지혜로운 해결책인지를 찾고자 했다. 그러한 지혜는 신성한 것이며, 사라스바티, 아폴로, 오딘과 같은 신에게서 비롯한다고 믿었던 사회가 세계적으로 많다.
이 책 《지혜의 역사》는 그 외에도 다양한 모습의 지혜를 소개한다. 저자는 지혜가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것이라고 믿기에 많은 사람을 등장시킨다. 또한 신성함 속에 지혜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신앙, 점성술, 예언과 같은 활동을 중시했기에, 이 책에서는 인물에 초점을 맞춘 장도 있고, 지혜를 대하는 태도를 중점적으로 다룬 장도 있으며, 때로는 두 가지 모두를 논의한 장도 있다. 이 책은 지혜의 역사를 마치 만화경으로 들여다보듯이 탐구했다. 신화와 전설, 역사, 문학, 점술, 철학, 신비주의, 마법, 속담 등 지혜와 연관된 여러 장르에 대한 고찰뿐 아니라, 고대 이집트, 중세 유럽, 현대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여러 시대와 문화권의 지혜를 탐사했다. 가히 지혜의 여러 가지 측면을 수많은 역사적 관점과 주제에 따라 탐색하고 조사한 역작이라 할 만한다.
특히 시대를 초월해 지혜를 전달하는 수단인 속담과 격언에 큰 관심을 보인 저자는, 일상생활 속에서 지혜를 찾는 독자를 위해 유익한 속담 100선을 책의 말미에 제공한다. 이 속담들은 지혜로운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모습을 알기 쉽게 보여준다. 또한 ‘지혜란 무엇이며, 어떻게 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결코 포착하기 쉽지 않은 지혜라는 대상을 인류는 어떻게 탐구해왔을까? 그 과정이 궁금하다면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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